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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교육운동 네트워크</title>
<link>http://www.edumnet.net</link>
<description>아름다운 교육에 대한 꿈과 사례를 소통하는 공간</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Wed, 07 Jan 2009 23:30:3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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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교육운동 네트워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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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메아 쿨파, 메아 쿨파, 메아 막시마 쿨파</title>
<link>http://explain.egloos.com/4044034</link>
<description>&lt;p&gt;폭격으로 많은 민간인이 죽어도&amp;nbsp;이스라엘은 그저 모든 게 하마스 탓이라고 둘러댈 뿐이다.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이다. 여기에 맞추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모든 게 하마스 때문이라고 말하며 이스라엘을 거들었다. 적반하장이다.&amp;nbsp;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억울한 죽음을 책임져야 할 사람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나서서&amp;nbsp;'메아 쿨파, 메아 쿨파, 메아 막시마 쿨파(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말하는&amp;nbsp;사람이 없다(종교가 가톨릭이 아니라서 그런가?). 그러는 동안에 죽은 사람은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폭음이 멈출 날이 오기는 할까?&lt;/p&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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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팔레스타인분쟁</category>
<author>解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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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Wed, 07 Jan 2009 23:04:38 +0900</pubDate>
<source url="http://explain.egloos.com" ><![CDATA[ 解明의 수사학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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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환상의 콤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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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lt;br&gt;이만한 환상의 콤비도 없다. 이문열이 나와서 “무슨 언론 사수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민주도 언론도 아니고 지난 10년의 그 방향에서 재미를 본 사람들이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서 하는 것 아닌가”하고 말하니까, &amp;lt;조선일보&amp;gt;에 이런 기사가 떴다.&lt;br&gt;&lt;a href=&quot;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06/2009010601690.html&quot;&gt;&lt;p&gt;&lt;br&gt;MBC'지금 이대로'지키려고 &quot;방송장악 음모다&quot;여론 호도&lt;br&gt;&lt;/p&gt;&lt;/a&gt;&lt;br&gt;다음은 이문열의 발언을 소개한 &amp;lt;조선일보&amp;gt; 기사.&lt;br&gt;&lt;br&gt;&lt;a title=&quot;&quot; href=&quot;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06/2009010600527.html&quot;&gt;이문열 &quot;홍위병들이 재미보다 권력 내놓으니 저항하는 것&quot;&lt;/a&gt;&lt;br&gt;&lt;br&gt;이문열도 이제 노이즈 마케팅 좀 그만했으면 한다. 요즘은 황석영한테도 밀리는 판국인데, 이렇게 계속 해봤자 자기 소설 판매에도 크게 남는 건 없을 거다. 뭔가 재미가 있어야지 &quot;무르팍도사&quot;에도 나갈 수 있을 거 아닌가. 맨날 이렇게 앞뒤도 맞지 않은 '꼴통 늙은이' 같은 얘기만 늘어놓으면 &amp;lt;조선일보&amp;gt;나 즐거워할 일이다. 지만원의 말로가 이문열 앞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거다. &lt;br&gt;&lt;br&gt;기득권 운운하지만, 과연 &amp;lt;조선일보&amp;gt;와 이문열이 지난 10년 동안 기득권을 빼앗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짜 기득권을 누려온 이들이 누군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분이 상했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한다. '가진 자들'이 이렇게 뻔뻔하니까 '못 가진 자들'도 뻔뻔한 거다. 기껏 이들이 떠올리는 '박해'의 사례라는 것도 &quot;일부 시민단체가 이문열의 책을 태운 사건&quot; 정도일 뿐이다. 자신들이 억압받았다는 걸 드러내는 이미지가 고작 이 정도여서야 어디 실감이 나겠는가. &lt;br&gt;&lt;br&gt;MBC투쟁은 방송자율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 자본의 투쟁을 촉발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문제이다. 이걸 '자율성' 문제로 슬쩍 치환해서 넘어가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방송자율이란 말일까. &amp;lt;조선일보&amp;gt;는 이제 늙은 이문열을 그만 이용해 먹었으면 한다. 이제 점점&amp;nbsp;쓸모를 잃어가는 이문열이 불쌍할 지경이다. 본인은 언론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언론이 자신을 이용한다는 걸 본인만 모르는 것 같다. 이문열의 적은 '홍위병'이 아니라 &amp;lt;조선일보&amp;gt;처럼 단물만 빨아먹는 언론이다. 맥락으로 보면 이문열의 '홍위병' 개념은 지금 정부의 편을 노골적으로 들고 있는 보수언론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amp;lt;조선일보&amp;gt;는 교묘하게 이 용어를 '과거지사'의 의미에 못 박아 버린다.&amp;nbsp;&amp;lt;조선일보&amp;gt;가 이문열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amp;nbsp;&amp;nbs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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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이택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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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Wed, 07 Jan 2009 10:14:4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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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교육의 의도적 실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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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하위드 진, 교육을 말하다(Howard Zinn on Democratic Education)』는&amp;nbsp;처음으로 읽은 하워드 진(Howard Zinn)의 글이었다. 진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 가운데서&amp;nbsp;깊이 생각할 만한 것이 많았는데,&amp;nbsp;재미있게도 이 글에서&amp;nbsp;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막상&amp;nbsp;진이 한 말이 아니라&amp;nbsp;도날도 마세도(Donaldo Macedo)가 들려준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말이었다. 어느 날 마세도가 많은 투자를 하고도 소수 인종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실패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프레이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quot;도날도 선생, 그렇게 순진해서야. 선생께서 실패하고 부르는 그것이 바로 이 체제가 본래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입니다. 이 체제는 애당초 실패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고자 만들어진 게 아니었으니까요.&quot; 마세도의 표현처럼 '그런 관점에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amp;nbsp;비단 마세도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약자를&amp;nbsp;위한 교육의 실패가 예상치 못한 결과가 아니라 처음부터 예정된 실패일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프레이리의 혜안을 따라잡으려면 나는 아직도 한참&amp;nbsp;멀었다. 적어도&amp;nbsp;옛날처럼 겉으로 드러내놓고 우민화 교육을 할 수 없고 국제중처럼&amp;nbsp;소수의 상위 계층을&amp;nbsp;위한&amp;nbsp;학교조차도&amp;nbsp;선발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amp;nbsp;듯한 시늉을&amp;nbsp;보이는&amp;nbsp;오늘날의 가식적인 교육 현실에서 교육의 의도적 실패는 아주 훌륭한 우민화 교육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amp;nbsp;우민화 교육은 지배 체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교육세를 폐지하려고 했었고(비록 그네의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비싼 돈을 내고 다녀야 하는 자립형 사립고를 더 늘리려고 한다. 교육의 양극화는 더욱 커지고 사회적 약자가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그냥 앉아서 바보가 될 것인가? 아니면 나서서 자유인이 될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요즘 아주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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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하워드진</category>
<category> 프레이리</category>
<category> 우민화교육</category>
<author>解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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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Tue, 06 Jan 2009 22:21:4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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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item>
<title>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소고</title>
<link>http://chamstory.tistory.com/166</link>
<description>&lt;br /&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lt;/SPAN&gt;&lt;br /&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웬 생뚱맞은 소리인가?‘하고 의아해 하겠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 ’교과서를 가르치는 사람‘ 이상으로 대답하기 싫어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일류대학을 나와야 사람대접 받는 나라에서 교사란 자신의 교육관이나 철학에 관계없이 교과서를 충실하게 가르치는 게 교사의 임무로 정형화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아니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런 근본적인 회의 따위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속편하다고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lt;br /&gt;
&lt;/SPAN&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0.tistory.com/original/24/tistory/2009/01/06/21/58/49635579defba&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획일교육.bmp&quot; height=&quot;353&quot; width=&quot;500&quot;/&gt;&lt;/div&gt;&lt;br /&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사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최소한 교사라면 미숙한 한 인간의 ‘삶을 안내하는 사람’이라는 책임감에서 고뇌하고 번민하는 게 도리다. 문제의 난이도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평가결과가 100점인가? 90점인가? 혹은 1등이냐 2등이냐를 문제 삼는 학부모들이 있고 우리학교가 우리시․군에서 몇 등짜리 학교인가에 관심이 있는 관료들이 좌우하는 세상에서는 교사가 교사답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 일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들이 모순된 현실의 벽을 깨지 못하고 현실에 영합하거나 안주한다면 교육다운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lt;/SPAN&gt;&lt;br /&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제자들에 대한 삶의 안내자로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교사는 교사가 아니다. 내가 맡은 교과. 그 교과서 안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그런 지식을 내면화함으로서 이 아이가 어떤 인간관, 역사관, 정치관, 세계관을 가지느냐에 무관심하다면 그는 지식 전달자일 뿐이다. 영어와 수학과 같은 도구교과라면 몰라도 이해관계나 가치관이 다른 입장을 담고 있는 교과서. 특히 윤리나 국사, 사회교과서의 경우 누가 어떤 관점에서 무슨 내용을 담아놓았는가 고민하지 않고 정답이냐? 아니면 오답이냐를 가려 주는 일은 교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다. &lt;br /&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br /&gt;
교과서밖에 가르칠 줄 모르는 교사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다. 식민지시대를 예를 들어보자. 일제는 조선학생들에게 일본사람을 만드는 게 교육의 첫째 목적이다. 일제가 만든 교과서는 그런 내용을 구체화하는 ‘황국신민화’를 교과서에 담고 있었다. 조선인 교사가 조선학생들에게 그런 교과서를 가르친다는 것은 반민족적이고 매국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주권을 도둑질한 박정희나 광주시민을 살상하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일당이 만든 교과서를 곧이곧대로 가르친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거짓을 참이라고 가르치는 결과와 다를 바 없다.&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br /&gt;
나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최근 뉴라이트학자들이 ‘기존의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좌편향 역사인식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쓴 참으로 황당한 내용을 담은 책을 대안 교과서라고 내놓았다.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라는 책에서 보듯, 만약 이런 관점으로 서술한 책을 교과서로 채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런 내용을 가르치는 교사는 제자들에게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당화하는 등 반민족적인 역사관을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암기한 지식으로 자신을 운명을 좌우하는 입시공부를 해야 하는 현실에서 교사란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는...’ 것이 교사로서 안일하게 사는 방법일 수도 있다. &lt;/SPAN&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br /&gt;
입시교육 체제에서 교사는 교육자가 될 수 있는가? 시험문제를 잘 풀이해 주지 않으면 무능한 교사가 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그런 능력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는 교직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시험문제풀이에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교사를 용납할 학부모도 관료들도 없기 때문이다. 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삶을 안내하는 진정한 교육자는 설 곳이 없다. 교사를 입시전문가가 되기를 바라는 현실에서 세상이 바라는 입시전문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교육자가 될 것인가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lt;/SPAN&gt;&lt;br /&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단순한 직업인으로서 교사, 자신의 전문영역을 전수해 주는 지식전달자로서의 교사, 제자의 삶을 안내해 주는 교사 중 어떤 교사로 살 것인가는 교사 자신의 몫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교사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일반 직업인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교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사들이 진정한 스승으로서 살아가겠다는 철학이 없는 한 교단의 황폐화는 계속될 것이다. &lt;/SPAN&gt;&lt;/P&gt;&lt;div class=&quot;entry-ccl&quot; style=&quot;clear: both; text-align: right; margin-bottom: 1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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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교육칼럼</category>
<category> 교사</category>
<category> 교육의 질</category>
<category> 식민지 근대화론</category>
<category> 정통성</category>
<author>참교육</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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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Tue, 06 Jan 2009 22:00:36 +0900</pubDate>
<source url="http://chamstory.tistory.com/" ><![CDATA[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sourc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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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부산 야경</title>
<link>http://byway69.tistory.com/entry/부산-야경</link>
<description>&lt;P&gt;황령산에서 바라본 부산 야경&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0.tistory.com/image/18/tistory/2009/01/06/18/16/4963215e24a5d&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090102부산01.JPG&quot; height=&quot;196&quot; width=&quot;620&quot;/&gt;&lt;/div&gt;&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4.tistory.com/image/27/tistory/2009/01/06/18/17/4963219b08ce9&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090102부산02.JPG&quot; height=&quot;221&quot; width=&quot;620&quot;/&gt;&lt;/div&gt;&lt;br /&gt;
부산국제영화제 거리의 야경&lt;br /&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3.tistory.com/image/26/tistory/2009/01/06/18/17/496321becc070&quot; alt=&quot;&quot; filemime=&quot;&quot; filename=&quot;090103부산04.JPG&quot; height=&quot;412&quot; width=&quot;620&quot;/&gt;&lt;/div&gt;&lt;br /&gt;
명성에 비해 맛은 실망스러웠던 '완당' &lt;/P&gt;
&lt;P&gt;&lt;br /&gt;
자갈치시장 주변 야경&lt;br /&gt;
&lt;div class=&quot;imageblock center&quot;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both;&quot;&gt;&lt;img src=&quot;http://cfs15.tistory.com/image/2/tistory/2009/01/06/18/21/4963229141cbf&quot; width=&quot;620&quot; height=&quot;412&quot; alt=&quot;&quot; filename=&quot;090103부산23.JPG&quot; filemime=&quot;&quot;/&gt;&lt;/div&gt;&lt;/P&gt;</description>
<category>방방곡곡나들이</category>
<category> 광안대교</category>
<category> 자갈치시장</category>
<category> 황령산</category>
<author>샛길</author>
<guid>http://byway69.tistory.com/entry/부산-야경</guid>
<pubDate>Tue, 06 Jan 2009 18:25:39 +0900</pubDate>
<source url="http://byway69.tistory.com/" ><![CDATA[ 샛길의 일상 ]]></source>
</item>
<item>
<title>공연예술놀이터</title>
<link>http://blog.naver.com/danieljo11/59757085</link>
<description>우리 집 애들은 아직 11살이 안 되었고, 저렇게 프로그램식 놀이는 일단 내가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그런데 14일 수요일에 상영한다는 다큐멘터리에는 관심이 간다. 웹에서 검색해봐도 볼 수 없는 영상이라 함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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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고 움츠러들기 쉬운 겨울방학, 
학원과 책상 앞에 메여있는 손과 발,
텔레비전과 컴퓨터에 붙들린 두 눈을 돌려
2009 ‘우둥불 공연예술놀이터’로 달려옵니다.
몸과 마음을 열어 호연지기를 기르고,
내 안에 꿈틀거리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
더 크고, 더 깊은 세상을 만나봅시다.
&amp;nbsp; 
● 주 최 : 나무닭움직임연구소,.......</description>
<category>육아·결혼</category>
<author>danieljo11</author>
<guid>http://blog.naver.com/danieljo11/59757085</guid>
<pubDate>Tue, 06 Jan 2009 12:37:01 +0900</pubDate>
<source url="http://blog.naver.com/danieljo11" ><![CDATA[ 飄飄하게 ]]></source>
</item>
<item>
<title>헤타리아-axis power-의 문제</title>
<link>http://newidea.egloos.com/1254752</link>
<description>심심해서 밸리를 돌아보던 도중 흥미로운 것이 있더군요. 일본에서 1월에 방영할 예정인 헤타리아 라는 만화입니다. 각 나라의 특징을 케릭터로 만들어서 역사와 관련된 부분, 작품에서는 주로 1,2차 세계대전을 설명해주는 코믹 만화물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웃나라를 .... &lt;a href=&quot;http://newidea.egloos.com/1254752&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1px;&quot;&gt;글 전체보기&lt;/font&gt;&lt;/a&g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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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극우주의</category>
<category> 헤타리아</category>
<category> 지랄같네</category>
<author>착선</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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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Tue, 06 Jan 2009 09:47:08 +0900</pubDate>
<source url="http://newidea.egloos.com" ><![CDATA[ 착선의 변증법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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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트라시마코스의 명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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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트라시마코스(Thrasymachos)는 말했다.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물론 소크라테스(Socrates)는 트라시마코스의 명제를 철저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국가론(Politeia)』를 벗어나면 트라스마코스의 명제에 충실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소크라테스에 밀려 트라시마코스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도 글라우콘(Glaukon)이 의구심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윤치호(尹致昊)도 트라시마코스의 명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윤치호는 성악설에 기대어 '힘이 정의이다'라고 말했다. 3·1운동이 일어났을&amp;nbsp;때 그는 비교적 정확하게 국제 정세를 읽고 외교론으로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논리를 반박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았다. 윤치호 같은 거물이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쉽지만, 낭만주의에 바탕을 둔 외교론이라는 허깨비에 빠지지 않고 철저하게 현실주의에 따른 판단을 한 윤치호를 무턱대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윤치호는&amp;nbsp;힘을&amp;nbsp;키울 때까지 독립이란 있을 수 없다며&amp;nbsp;모든 독립운동을&amp;nbsp;부정했다.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라고 했던 윤치호의 말은 그런 생각을&amp;nbsp;잘 보여준다. 그런 윤치호가 나중에 태평양전쟁을&amp;nbsp;유색인종의 해방을 위한 싸움으로 보고 친일의 길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제국주의가 가지는 폭력과 인종차별을 미워했으면서도 끝내 인종주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제국주의를 찬양한 윤치호와 같은 모순을 지닌 사람이 오늘날에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분쟁을 놓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선악으로 나누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맞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가해자이고 팔레스타인이 피해자라고 해서 팔레스타인을 무조건 선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amp;nbsp;그러나 힘이 없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하마스와 같은 물리적 폭력을 전혀 쓰지 않고 정당한 요구를 내세워도 힘으로 누르는 이스라엘을 보고도 어설픈 양비론을 펼치는 게&amp;nbsp;진짜 공평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무엇보다 지켜야 할 가치는 사람의 목숨이다. 그런 가치를 마구 짓밟는 이스라엘이 설사 악은 아니라고&amp;nbsp;할지라도 적어도 정의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amp;nbsp;내가 어떤 말을 해도 트라시마코스의 명제에 충실한 사람에게는 그저 가식과 허위에 찬 말로만 들릴 것이다. 그것이 더 가슴 아프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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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팔레스타인분쟁</category>
<category> 트라시마코스</category>
<author>解明</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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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Mon, 05 Jan 2009 22:45:46 +0900</pubDate>
<source url="http://explain.egloos.com" ><![CDATA[ 解明의 수사학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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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정치의 위기, 정치의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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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점입가경이다. 정부와 여당의 행태 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서 1년 동안 해놓은 일이라고는 분란이나 일으키고 말썽이나 부린 것이 전부다. 이런 평가가 박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을 것 같다. 도대체 대통령은 그렇다고 쳐도, 참모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들려올 정도니 말이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생각한다면, 정부와 여당이 뭘 모르고 이런 추태를 연출한다고 볼 수는 없다. 나름대로 계산을 갖고 행동했지만, 그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고 봐야할 거다. 누구는 이런 이명박 정부의 행보를 두고 ‘파시즘의 악취’를 맡는다고 했지만, 민중의 지지가 없는 파시즘이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지지도가 이렇게 낮은 이명박 정부는 아무리 파시스트가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그 부르주아 세력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라 파시즘을 송충이보다 싫어하고, 한국의 부르주아 정치구조가 인맥과 학맥으로 나눠 먹기식으로 짜여 있는 조건에서 파시즘이 권력을 접수하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다. &lt;br /&gt;
&lt;br /&gt;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실패하고 물러났을 경우이다. 이때가 사실 파시즘에게 호기일 수 있다. 자본주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 지금 한국의 현실이 히틀러의 집권 이전과 유사하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건 좀 다른 문제이지만, 어쨌든 한국 사회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정치의 위기라는 게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건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다. &lt;br /&gt;
&lt;br /&gt;
이런 상황에서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에 대한 혐오는 이번에도 되풀이되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런 추태를 연출하는 모습에 모두 즐거워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런 불편한 심기는 익숙한 양비론적 정치 혐오주의의 귀환이라기보다,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에 진짜 민주주의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lt;br /&gt;
&lt;br /&gt;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국회의사당 밖에 있었다. 이른바 ‘국민’은 이 사실을 경험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정치인’은 이런 바깥의 민주주의에 모르쇠를 놓고 있는 모리배집단으로 비칠 뿐이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고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이중구조는 항상 정치와 민주주의를 충돌시켰다. &lt;br /&gt;
&lt;br /&gt;
국회의사당의 활극은 이런 까닭에 가능하다. 여의도를 지배하고 있는 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이념이지만 정작 부르주아 자신은 이런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쳐본 적이 없는 곳이 한국이다. &lt;br /&gt;
&lt;br /&gt;
오히려 부르주아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민중’이 부르주아를 위해 이념을 사수해온 게 한국의 역사이다. ‘반공’과 ‘멸공’은 이런 괴리를 매끈하게 메워주는 대중적 판타지였다. 이런 반공주의는 냉전 종식 이후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진입하기 편리한 고속도로를 닦아놓았다. &lt;br /&gt;
&lt;br /&gt;
겉으로 보기에 두 이데올로기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실상은 ‘이기적 자본주의의 옹호’라는 측면에서 높은 친화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반공투사가 ‘비즈니스맨’으로 순식간에 대체될 수 있는 곳이 한국인 거다. 이건 비관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우리의 조건이다. 자신의 이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 자체가 희극에 지나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 자기 규율과 도덕에 투철한 ‘상승기’ 부르주아의 재탄생을 꿈꾸는 건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개혁’이라는 건 결국 이기적 자본주의를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고, 국가의 부를 인구의 2%를 위한 금고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이런 판국에 어차피 자본주의가 이기주의라면 가장 이기적인 놈이 살아남는다는 논리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 ‘국민’은 이런 이명박식 경제논리를 지지했지만, 앞으로 낙오병이 점점 늘어난다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회의사당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을 일괄 처리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고집은 앞으로 닥쳐올 정치적 위기를 본능적으로 예감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위기는 바로 이들이 ‘정치’라고 생각하는 그 균형과 통제의 파괴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의 위기야말로 ‘다른’ 정치의 가능성을 열어줄 계기이기도 할 거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미디어오늘&amp;gt;에 게재되었음</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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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민주주의</category>
<category> 파시즘</category>
<category> 정치</category>
<category> 자본주의</category>
<category> 부르주아</category>
<category> 신자유주의</category>
<author>이택광</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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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Mon, 05 Jan 2009 19:33:5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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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인성교육 ㅅㅂㄻ</title>
<link>http://blog.naver.com/danieljo11/59679083</link>
<description>여기저기서 하도 인성교육이란 말을 하는데 그거이&amp;nbsp;대체 뭔지 나는 모르겠다. 무슨 대형&amp;nbsp;강력범죄 터지거나 근친살인 같은 일이 터지면 사람들이 늘상 하는 얘긴데 나는 인성도 알겠고 교육도 알겠지만 인성교육이란게 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들 말로는 학교에서 하는&amp;nbsp;인성교육이란 게 학생들에게&amp;nbsp;무슨 명심보감 읽고 쓰게&amp;nbsp;하고 아침에 5분명상하고 수련회가고 뭐 그런 걸&amp;nbsp;하면 애들이 다 인성이 좋아진다는&amp;nbsp;거 같다.&amp;nbsp;-.,- 뭐 미친 것들은 약도 없고 몽둥이도 필요없다더니. 이 미친 것들의 대표격인 인물이 신년 뭐시기에 또 인성교육 운운 했다고 한다.&amp;nbsp;하도 궁금해서 뇌이버 검.......</description>
<category>인성교육조까</category>
<author>danieljo1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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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Sun, 04 Jan 2009 23:23: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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